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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의 1919년 3월 10일 항거!!! 민족의 운명을 가른 순간!!!

기사입력 2019.03.1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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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룰루 프라이 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교장선생님이었던 외국인 선교사 입니다. 그녀는 삼일운동이 발발했을 때, 이화학당의 학생들에게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며, 3월 10일까지 만세운동 참여를 막았습니다. 3월 10일 차라리 나를 밟고 가라고 했던 프라이, 유관순을 비롯한 그 학생들은 그래도 조국의 만세운동 참여를 택했습니다.

    그 후, 1919년 음력 3월 1일 즉 양력 4월 1일 정오, 천안의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시위를 벌인 조인원 열사와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 열사 그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유관순의 어머니마저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부모 잃고 집을 잃게 만든 원수 일본제국주의를 향한 항거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법정에서 판사들에게 의자를 던지고, 옥중에서도 만세운동을 1년 6개월동안 쉬지 않고 벌이다가, 결국 아랫도리를 폭행하는 일제헌병들의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방광파열로 죽게 됩니다. 이때가 1920년 9월 28일, 석방을 이틀 앞두고 벌어진 비극입니다.

    룰루프라이는 유관순의 시신을 수습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슬프게 웁니다. 유관순과 그녀의 스승 룰루프라이, 죽음의 위협을 무릅쓴 열사의 항거와 추방의 위협을 무릅쓴 참 스승의 이야기.
    오늘 두 사람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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